조각가 이진씨가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홍익대에서 도조를 전공하던 때였다. 영어를 곧 잘하던
그녀를 눈여겨 본 교수의 추천으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한 비엔날레의 코디네이터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행사에서 그녀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던
뉴질랜드 작가의 러브콜을 받았고, 1998년 그녀는
용감하게 뉴질랜드로 떠났다.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일을
하면서 세라믹만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제약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 환경도 답답했고요.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죠. 그때 만났던 것이 오마루 스톤입니다.”
오마루 스톤에 푹 빠진 그녀는 돌을 구하기 위해 무작정
광산으로 떠났다. 광부 부부는 3톤이나 되는 돌을 주문하는
낯선 동양인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호기심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까지 선뜻 내어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묵묵히 돌을 깎기 시작했다. 심취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처음에 의심과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주민들은 작품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매스컴들은 ‘한국에서 온 신비로운 그녀’에 대해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만의 천연자원 오마루 스톤을 사랑해주는 이진
작가를 그들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광산 부부는 그녀를 수양딸로 삼아 주었고, 까다로운
외국 반출이지만 한국에는 너만을 위해 보내겠다’는
약속을 할 정도였단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에오테아로아(Aoteoroa)’이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마오리족 언어로 ‘하얀 긴 구름의 땅’
이라는 뜻이다. 뉴질랜드를 의미한다. 이름을 지어준 것도
광산의 안주인이었다. 이 작품으로 1999년 그녀는 오마루
스톤 첫 조각 전시회를 갖게 되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을 완성했을 뿐인데, 이 작품은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첫사랑 에오테아로아가 뉴질랜드 올해의
비즈니스 여성에게 주어지는 ‘대프니 어워드’의 조각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에오테아로아의 미니어처는
그때부터 매년 성공가도를 달리는 뉴질랜드 여성들에게
명예의 상징으로 전달되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오마루 스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첫 작품 에오테아로아. 이 모든 것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